2012. 6. 8.

호밀밭의 파수꾼


화려한 간판의 빛도 머금은 익숙해진 야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에스프레소 한잔 더 주시죠
2800원 입니다
- . 츠르르르르

초침소리가 귀에 익숙해져 언제 지나는지도 모른다. 커피잔을 돌려주고 되받기도 서 너 차례.
통장잔고는 균등하게 사그라져간다.
 하나 둘 사람들이 오가는 발걸음도 익숙해지고 숨소리도 점차 익숙해지지만, 여전히 건너 두 번째 테이블에 앉은 억새풀 같은 아이들의 수다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신경이 자꾸만 곤두서고 날카로워져 간다.


집중 해야해, 집중 해야해, 집중이런 씹-‘

오른 다리가 자동으로 떨고 있었고, 한번의 왕복운동은 쉼없이 흐르고 있었다.
필시 자동차의 엔진원리도 이와 같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 싸매고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잠재우려 다시 질끈 감았다. 떴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갑자기 테이블을 진동시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커피-‘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체력소모가 많았다.
약간의 현기증을 동반하면서 다리는 힘없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건내 받으며 인사를 건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였다.
이는 아마도 2003 8월 군입대차 훈련소를 가면서 생활의 제한에서 비롯된 일상에대한 감사함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일상생활의 자유를.

코 끝으로 내리진 커피 향을 잠시 맡고는 크레마를 내려보았다. 끈적끈적하게 보이는 저 작은 커피잔의 에스프레소를 보고 있자니 마치 내 머리속을 드려다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차츰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어느새 손을 감싸 쥐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는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도대체 내가 뭐가 잘못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야. 그게 뭔데 대체 날, 이렇게…’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인지 아니, 잘못된 시작은 없었는데 내가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하면 할수록 눈시울은 붉어지고 머리는 달아올랐다.
이윽고 귓가의 소리는 먹먹해지고 주변은 검게 물들어져 갔다.
작은 공간이 생기고 그 속에서 난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필름이 지나가듯 머리 속을 헤집어 지나갔다. 영사기가 흐르면서 머리 속에서 그 와 같은 환청이 들렸다.


잘 못 된 것은 없어. 잘되고 있어. 물론 지금도 잘 되고 있고. 그런데 왜....’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짚어갔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면 그럴수록 검은 공간을 비집어 들어 유영하는 몸놀림은 어느덧 가벼워지고 있었다. 구수하게 내려진 참기름 속으로 손이 미끄러지듯이
어둠이 짙어지고 몸이 흐물흐물해져 늘어진 치즈조각이 되고, 나서야 눈 앞에 그림이 그려졌다.
검정과, 흰 여백, 그리고 수없이 지나는 많은 선, 그 선들이 만나 이루는 까만 점, ..아니 이게 대체..’
까만 머리 속으로 미끄러진 내 몸은 그 것들을 대면하고 있었다. 한발 물러서 곰곰이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뜨겁게 달아 올라있었고 커피도 어느 정도 식어있었다. 수다로 메워진 공간은 아직 여전했다.
붉어 진 눈시울 때문인지 피로한 것인지, 눈앞은 흐려져있었고 두 눈은 따가웠다.

놓여진 펜과 책. 어쩐지 이 책을 읽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누군가가 벌거벗은 나의나체를 제 눈앞에 놓고서 서로 비교하고 따지고 재고 드는 걸 그 옆에 서서 고스란히 듣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책에다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막힘 없이 흘렀다. 흐르다 보니 머리 속의 것은 한 페이지를 넘어 다른 페이지로 이어졌다.
 다시, 그림을 그렸다. 빛과 여백과 그것들을 채우는 요소요소를 책 여백에다 그려 넣었다.
머릿속에 흐르는 지난 시간들을 쓰고 그려갔다. 마치 영화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내친김에 콘티도 그려 넣었다.
이윽고, 얼굴엔 미소가 흘렀고 머리가 환히 밝혀졌다.
무거웠던 근육들도 풀어져버렸고, 두 눈도 상쾌했다
마음 속 작은 샘을 가로막던 돌덩이를 옆으로 비켜내에 고였던 물줄기를 다시 흘려 내렸다.
 돌덩이는 정의적으로 명확해졌고, 들고 있던 펜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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