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

망상의 한자락



고등학교시절 이야기다.
그것이 성욕인지도 모를 나이였다.
시험기간이 되면 숨죽인 한밤중에 어둠으로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다.
사람들이 코고는 소리.
또각또각 누군지 모를 구두 굽소리.
마치 향수냄새라도 금방 코끝에 스칠것 같던 망상.
틱.틱.틱. 초침바늘이 흘러가면 나도 모르는새 시간은 이미 흘러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나선 시간은. 새벽3시
어두컴컴한 밤에 붉은 가로등 빛으로 드리운 골목은 누가봐도 응큼했다.
간혹 불이 켜져 있는 건물들이 눈에 띄면, 지극히 사무적인 사고로 변했다.
행여나 싶은 마음(?)으로 골목 골목을 지나 학교로 향한 발걸음.
술에 취해 비틀되는 사람들과 어둠속에서 청소하는 미화원.

짧은 스커트의 여자는 한번 본적이 없었다.
간혹 높은 힐을 신고 지나가는 여자의 뒤태만 훔쳐보고도 마음에 전율이 일던 그때.
모름지기 여자는 각선미고 발목이 이뻐야하며 손발이 깨끗해야 한다.
그렇게 어둠 어둠을 지나 멀리 희미하게 학교가 보이면
알수 없는 상실감이 가슴에 드리워 졌다.

목적지 근방에 다다르면 나와같은 학생들이 간헐적으로 눈에 띈다.
같은교복, 여학생. 그리고 보고싶지 않은 남학생.
내가 다녔던 본교에선, 커피색도 아닌 미숫가루색 스타킹과 흰색 스타킹이 유행했다.
행여 스치는 살결에 마음이 설레던 날이 하루 이틀일이 아니었다.
소실적 육성 시물레이션과 엘프사 컴퓨터 게임 따위로 시간을 보냈던 나는
그런 망상에 젖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즐길만한 충분한 사유거리가 되었다.

학교 언덕을 올라가면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교복 스커트와 아킬레스건.
계단을 지나 머리를 들면 아찔한 광경.
체벌받고 있는 복도위의 엎드린, 혹은 꿇어앉은 여학생들.
도서관에 삼삼오오 숨죽여 공부하던 여학생들의 책상 밑 풍경들.
슬리퍼, 스타킹, 그리고...

하지만, 어린시절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망상의 그것들은 단 한번도 내게
아무런 일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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