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8.

이별

온종일 모니터만 들여다 보았다.
매일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내가 그 시간 동안에 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저도 모르게 쉬어내어 있는 호흡과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심장박동.
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눈이 시리고, 저 모르게 올라간 손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묻어나는 개기름.
'하, 이게 뭐하는 거냐-'
터져나오는 한숨이 시간에 흐려지는 찰나, 무심코 코 끝을 자극하는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시계를 들여다 본다.
5시 34분 17초 18초 19초 ...
잘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수초동안 쳐다보고만 앉아있다.
모든것이 제 자리다.
네모반듯한 책상과, 널부러진 화일들. 가위, 실과 바늘, 마우스, 수 시간 동안 열기를 뿜어내는 노트북 냉각기.
몇 해 전 상경을 위해 어렵사리 장만한 삼보 노트북은, 여러모로 사고도 많았지만 여전히 잘 돌아간다.
문득 저 낡은 노트북에 저절로 내가 전이 되어버린 듯 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이 시간에도 쉼없이 뇌는 썩어지는 것만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가슴 저변에서 끓어오리는 성욕과도 같은 분노를 못 이겨내고 숨겨놓은 담배 한개비를 꺼내 들어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사무적이기만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순간 내 온몸을 감싸는 습함, 그리고 온종일 날 괴롭히던 낡은 냉각기 소리대신 차갑고도 힘찬 빗줄기 소리가 내 두 귀를, 내 머릿속을 적시고 들었다. 저절로 미관이 찌푸러졌지만, 이미 엉키어 버린 뇌와 구겨질대로 구겨진 마음이 습한 공기로
슬그며니 펴지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터벅 터벅 비가 내리는 현관까지 나섰다. 세차게 흩뿌려지는 비에 나는 힘도 없이 조금씩 젖고 있었다.
불현듯 떨어진 한방울의 빗방울 덕분에 손에 쥔 담배 한개비가 생각이 났다.

몸을 돌리고, 입에 가져다 문 뒤, 양 손으로 담배를 가리고, 라이터를 움켜 쥐었다.
'틱- 틱- 툭- 후욱... 쉬이-익,'
눈앞을 가득 메운 빗줄기 사이로 연기가 빠져나갔다. 깊은 한숨이 흐르고서야 한결 마음이 정리되는 듯 했다.
저절로 다리가 굽혀져 비가 흐르는 한 발 뒤로 나는 쪼그려 앉아 담배 한모금을 들이키곤 손에 끼워 들었다.
그나마 비가 흐르는 지금 같은 날에는, 평소 그렇게도 날 괴롭히던 자동차 소음도, 공사장 굉음도 한결 빗속으로 머금어져 나를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숨통을 조여오는 햇볕마저도 가려주니까.
그때, 맞은편에서 하늘색 하프컷 야상을 입은 소녀가 우산을 펴들고 은행을 막 나서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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