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8.

드라마시티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적당히 습한 날씨가 짜증내기엔 매우 흡족한 날인 듯하기도 하다. 밤새 내 귓가를 속삭이며 항상 모자란 내 잠을 함께해준 모기 덕분에 소주 열병은 족히 마신듯이 머리는 멍하고 눈앞은 퀭하다.
“이거 출고가 언젠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거야?! 이거 뭐,”
욱덕진 손으로 서류를 뒤척이고 있다. 미술관은 커녕 미술책도 한번 펴 본적 없는 듯한 최 부장의 기름진 얼굴은 시종일관 일그러지며 이야기하는 내내 실룩거리는 입을 한 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 아니, 이 대리 머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내가 지금 심 봉사를 앞에 데려다 놓고 일장춘몽에 즐거워 제 앞날도 모르고 도살장 끌려가는 암소마냥 헤벌죽하니 히죽거리면서 그렇게 입닫고 있을거야?! 이건 뭐,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하나. 대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고 있는 건지. 나 원 참.!”
도대체, 머라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 살아 들을 잔소리는 다 듣는 듯 한 기분이다. 최 부장 앞에서 홀로 듣는 이 연설의 3분 남짓 되는 시간은 아마 지독한 화생방 훈련보다 더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 부장님, 여기 보시면 납기 지연 사유와 최종 납기일까지..”
‘ 탁!’
최 부장이 저리로 던져 버린 보고서가 마치 시대를 풍미하던 어느 생리대 광고의 순수하고 뽀송뽀송한 깃털처럼 날개 짓하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순간 보고서가 그린 포물선이 너무도 아름다워 넋 놓고 바라만 보고있었다.
“ 저게 바로 이 대리의 자리인 것 같구만. 생각하며 좀 살자 이대리.”
“죄송합니다.”
하나도 죄송스럽지 않은 사과의 말 한마디와 함께 나는 떨어진 파일을 주워 내 자리로 향했다. 흘깃 쳐다본 최 부장은 뭐가 그렇게도 뿌듯한 것인지 목에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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