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8.




자본주의 철퇴먹이기

자본주의 철퇴먹이기

이런건 어떨까.
사람을 경제적 수단으로 여기며 사는 소위,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들에게 역공을 하는 것.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파악하여 이에 맞는 먹잇감을 던져주고 마음껏 거두어 들여 그돈으로 배불리 사는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공격을 감행하는 것.
(깊게 생각지는 말자)

우리는 유유히 속아주는 척 해당 소비물을 잔뜩 사들여 놓고 '오호라 역시!' 하고 멘탈나르시즘을 느낄때 고스란히 먹여주는거.
예를 들면, A사에서 아주 그럴듯한 상품을 출시한다.
이 상품은 우리 생활에 없어도 되지만 굳이 만들어 필요를 강요하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수순을 밟도록 하게한다.
우리는 처음 하나 둘 호기심과 자극적인 소비심리로 인해 모여들게 되지만 결국은 우리는
매출을 높여주는척 관심을 쏟아주고는 고스란히 비웃어주곤 전의를 상실케 만들어 버리는거지.
'우리가 그따위로 밖엔 안보였냐?'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나 둘 무너뜨려 가는거야.
우리는 최소한의 생을 위한 소모와 소비를 하며 사는 것으로 의기투합하고.
(물론 깊게는 생각지 말자)

드라마시티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적당히 습한 날씨가 짜증내기엔 매우 흡족한 날인 듯하기도 하다. 밤새 내 귓가를 속삭이며 항상 모자란 내 잠을 함께해준 모기 덕분에 소주 열병은 족히 마신듯이 머리는 멍하고 눈앞은 퀭하다.
“이거 출고가 언젠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거야?! 이거 뭐,”
욱덕진 손으로 서류를 뒤척이고 있다. 미술관은 커녕 미술책도 한번 펴 본적 없는 듯한 최 부장의 기름진 얼굴은 시종일관 일그러지며 이야기하는 내내 실룩거리는 입을 한 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 아니, 이 대리 머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내가 지금 심 봉사를 앞에 데려다 놓고 일장춘몽에 즐거워 제 앞날도 모르고 도살장 끌려가는 암소마냥 헤벌죽하니 히죽거리면서 그렇게 입닫고 있을거야?! 이건 뭐,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하나. 대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고 있는 건지. 나 원 참.!”
도대체, 머라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내 살아 들을 잔소리는 다 듣는 듯 한 기분이다. 최 부장 앞에서 홀로 듣는 이 연설의 3분 남짓 되는 시간은 아마 지독한 화생방 훈련보다 더 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 부장님, 여기 보시면 납기 지연 사유와 최종 납기일까지..”
‘ 탁!’
최 부장이 저리로 던져 버린 보고서가 마치 시대를 풍미하던 어느 생리대 광고의 순수하고 뽀송뽀송한 깃털처럼 날개 짓하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순간 보고서가 그린 포물선이 너무도 아름다워 넋 놓고 바라만 보고있었다.
“ 저게 바로 이 대리의 자리인 것 같구만. 생각하며 좀 살자 이대리.”
“죄송합니다.”
하나도 죄송스럽지 않은 사과의 말 한마디와 함께 나는 떨어진 파일을 주워 내 자리로 향했다. 흘깃 쳐다본 최 부장은 뭐가 그렇게도 뿌듯한 것인지 목에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일상이 무료한 당신에게

억만금도 아깝지 않을 나른한 늦잠. 뽀송뽀송한 이불에 몸을 파묻은 당신은 이미 나른하게 내려오는 일요일 오전 11시쯤의 햇살과 함께하고 있다. 지난밤에 은은한 벚꽃 향을 머금은 듯 따뜻한 샤워에, 손이 채 닿기도 전에 금방이라도 녹아 사라질 듯 하늘하늘한 머리 결은 당신의 느긋한 잠을 도와주기에는 세상 어느 것과 견주어도 그 상대가 무색할 만큼 평온하다. 매일 아침 가녀린 커튼 사이로 숨어드는 햇살에 잠을 깬다면 얼마나 좋을까.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잘 다려진 옷을 꺼내어 입는 것과 간단하게 차려진 토스트 한 조각과 담백한 우유. 그리고 다시 한번 세상이 가슴에 품어질 벅찬 하루를 기대하면서.
조금도 틀림없다. 당신은 내가 한 이야기와 무관하다는 것.

지하철 안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출근길, 그리고 퇴근길, 그 외 외근시간.
어딘가 모르게 표정들은 침울해 보이고 그들의 형색 또한, 주위 흔한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흔한 이들과는 다르다.
사회복지사인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대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따듯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며 아침이며 점심 저녁 매 끼니를 굶지 않는 따듯한 식단이었다.
사람들의 따듯한 온정이나 시선이라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어디까지나 ‘-수 도 있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사회로부터 시선을 등지어지거나 시선에 등을 진사람들. 내가 가난뱅이의 부모로부터 태어나는것과 부유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적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듯 처음부터 노숙인이나, 구걸로 제 삶의 시간을 소비하고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모습을 그려 오진 않았을 것이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원치 않은 선택이었고 그 결과임은 분명할 것 이다.
의식적으로 구걸을 하며 노숙을 하는 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좁고 차가운, 사람들의 감정이 메말라 버린, 온정이라곤 어쩌면 찾아보기힘든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공간,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만든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공강만큼은 상대방을 위한다거나, 배려한다거나 체면을 차리는 공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원하고자 하는 바를 얻기위한 노력은, 어쩌면 그 시작부터가 잘못 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이미 사업가이었거나 대학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로 사회에서 어느정도 역량있는 자들이었으며, 물론, 그렇지 않은 자 들도 있다.
사회라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터울속에서 발걸음 따위가 한보 늦어졌다고 해서 도태되거나 제 삶의 빛을 잃어 영혼의 샘이 고갈되어 각박하다거나.
그럴 수도 있는것과 그럴 수는 없는것. 그렇게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않아도 되는 것.
반드시해야 하는것과 해서는 안되는 일. 이미 우리는 그런 선택에 있어 선택권의 자유가 사라진것은 오래 일런지 모른다.
사회속에서 자유를 갈망하고 제 영혼의 샘을 길러 마르지 않도록 갈고 닦는 것은 어느 수준만큼의 여유와 어느 수준만큼의 지식인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닐까.
나와 다른 모습인 많은 ‘그’들이 지금을 조금이나마 이해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가운 바닥에 앉아 구걸하거나 다리를 절며 구걸을 하고, 혹은 껌이나 도라지, 시금치를 팔기위해 어둡고 차가운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주머니 속에 잃어버린 웃음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런지, 잃어버렸던 따듯한 가족, 친구들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런지.
혹은, 먹다남은 술명이 들어있을런지도.
편견과 가식들이 난무하는 이사회에서 우리가 기대하는것은 오로지 성공의 길 뿐인가.

이별

짙은 곤색의 장화,
도트 스타킹,
하늘색 야상점퍼,
검 붉은 빛의 웨이브진 단발머리.

흩뿌려진 빗방울 덕분에 안경이 흐려지긴 했지만, 이상하리 만치 그녀의 모습은 눈에 선명했다.
아니, 눈이 아니라 머리에 저절로 그려지고 있었다.
자칫 그녀의 향마저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뱉어낸 담배 연기속으로 그려진 그녀의 모습은 세찬 바람과 빗줄기 속을 흘러 스며지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비로 흐려진 안경을 벗어 들고 치즈저럼 늘어진 가디건에 안경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잘 닦여 질리 없었다. 되려, 얼룩이 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다.
희 뿌여진 눈앞으로 그녀가 곧 사라 질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분주해진 손은 더욱더 안경을 얼룩지게 만들었고, 지문과 물기로 얼룩진 안경을 눈에 가져다 댔을땐,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 였다.
손에 쥐어진 담배마저도 이미 필터 가까이로 타고 없었다.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 만 같았던 그녀가 가까스로 고요해진 내 마음을 흐트려 놓았고,
조급해진 마음은 그녀를 떠나 보내고 말았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손에 끼워진 담배가 연기로 온데간 곳 없이 흩어지고 없어지듯 그녀도 홀연히 사라졌다.
알 수 없이 허탈해진 마음과, 아스팔트를 부딪히는 빗소리로 가득 찬 머리.
바람은 몹시도 불어 눈 앞은 비로 가득 했고, 나는 그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목으로 넘겨지고 이따금 삼켜지는 침은, 내리는 빗물과도 같았다.

손 등으로 비가 닿았다.
잘게 부셔져 닿은 빗방울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내 손은 비로 가득 젖어 있었다.

'뭐였을까, 누구였을까, 어디로 간걸까, 뭘 좋아할까, 곧 누군갈 만날까, 아니, 집으로 간 걸까, 어디서 나온 거지,? ...'
끝없는 질문이 머리를 메우고 있었다.
귀는 차가워 지고, 찬 바람도 가슴 섶으로 숨어 들고 있었다.
머리는 점점 까매지고, 사지와 이격되어 자기력이 생긴 한 덩어리의 작은 껌ㅡ 누군가의 입에서 충분히 단물이 훔쳐지고 돌돌 말려 땅으로 내뱉어진ㅡ 이 되버린 듯 했다.
이내 세상도 어둑해 지고 있었다.
마침 비를 가르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굉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

온기를 빼앗겨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 가디건ㅡ 치즈처럼 늘어진ㅡ과 빗방울이 송글 송글 맺힌 검정색 티셔츠를
손 등으로 털어냈다. 물기를 훔쳐냈다.
잠시 잠깐 현기증이 났지만 걸음을 걷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머리가 가벼워 진 느낌. 몸이 그새 식어 ㅡ컴퓨터의 냉각기가 절전모드로 잠시 멈춘듯 ㅡ 조금은 찌뿌등했다.
기지개를 켜고 뻣뻣해진 목을 돌려 긴장된 근육을 풀어냈다. 아까와는 다른 차가운 한숨이 깊이 품어졌다.

사무실로 터덜터덜 다시 옮겨진 걸음 앞엔, 여전히 사무적인 불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분명 어둑해진 바깥보다도 밝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시각계는 이를 부정하고 있었다. 되려 어두운 공간으로 먹혀져 들어가는 기분.
벽에 걸린 증정용 거울을 보며 머리에 묻은 물기도 훔쳐냈다. 덕분에 손은 물기가 마를 틈이 없었다.
거울로 고정된 시선 끝에, 시계가 있었다

이별

온종일 모니터만 들여다 보았다.
매일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내가 그 시간 동안에 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저도 모르게 쉬어내어 있는 호흡과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심장박동.
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눈이 시리고, 저 모르게 올라간 손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묻어나는 개기름.
'하, 이게 뭐하는 거냐-'
터져나오는 한숨이 시간에 흐려지는 찰나, 무심코 코 끝을 자극하는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시계를 들여다 본다.
5시 34분 17초 18초 19초 ...
잘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하니 수초동안 쳐다보고만 앉아있다.
모든것이 제 자리다.
네모반듯한 책상과, 널부러진 화일들. 가위, 실과 바늘, 마우스, 수 시간 동안 열기를 뿜어내는 노트북 냉각기.
몇 해 전 상경을 위해 어렵사리 장만한 삼보 노트북은, 여러모로 사고도 많았지만 여전히 잘 돌아간다.
문득 저 낡은 노트북에 저절로 내가 전이 되어버린 듯 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이 시간에도 쉼없이 뇌는 썩어지는 것만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가슴 저변에서 끓어오리는 성욕과도 같은 분노를 못 이겨내고 숨겨놓은 담배 한개비를 꺼내 들어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사무적이기만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순간 내 온몸을 감싸는 습함, 그리고 온종일 날 괴롭히던 낡은 냉각기 소리대신 차갑고도 힘찬 빗줄기 소리가 내 두 귀를, 내 머릿속을 적시고 들었다. 저절로 미관이 찌푸러졌지만, 이미 엉키어 버린 뇌와 구겨질대로 구겨진 마음이 습한 공기로
슬그며니 펴지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터벅 터벅 비가 내리는 현관까지 나섰다. 세차게 흩뿌려지는 비에 나는 힘도 없이 조금씩 젖고 있었다.
불현듯 떨어진 한방울의 빗방울 덕분에 손에 쥔 담배 한개비가 생각이 났다.

몸을 돌리고, 입에 가져다 문 뒤, 양 손으로 담배를 가리고, 라이터를 움켜 쥐었다.
'틱- 틱- 툭- 후욱... 쉬이-익,'
눈앞을 가득 메운 빗줄기 사이로 연기가 빠져나갔다. 깊은 한숨이 흐르고서야 한결 마음이 정리되는 듯 했다.
저절로 다리가 굽혀져 비가 흐르는 한 발 뒤로 나는 쪼그려 앉아 담배 한모금을 들이키곤 손에 끼워 들었다.
그나마 비가 흐르는 지금 같은 날에는, 평소 그렇게도 날 괴롭히던 자동차 소음도, 공사장 굉음도 한결 빗속으로 머금어져 나를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숨통을 조여오는 햇볕마저도 가려주니까.
그때, 맞은편에서 하늘색 하프컷 야상을 입은 소녀가 우산을 펴들고 은행을 막 나서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