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2.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데


#1.
시간은 네시를 넘었고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2시간 30분은 등반해야 정상에 다다른다. 일몰시간은 5:46PM.
아니나 다를까. 나는 목적지에서 1.5 km 떨어진 곳에 하차했다.
아직 입구도 아니다.
그냥 돌아갈까?

#2.
둘레길만 걸을려던 발걸음은 이미 산으로 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하산해오고, 내 거친 호흡은 더 거칠어졌다.
어느새 석류물 같은 노을이 등 뒤에서 내려 쬐고 있었고,
부는 바람이 조금은 거칠게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했다.
타종소리가 들린다.

#3
3.5 km 2.9 km ..1.3 km ...
0.9 km 아줌마 둘이 나를 훑으며 옆을 지난다.
'이 시간에 오르는 사람도 있네'
제법 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는 손전등에 의지했다.

0.6km .. 아줌마 한 분이 서 있고 아저씨가 곧 따라 내려온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가 말을 건낸다.
- 깜깜한데 이제 올라가시게요?
예. 금방 갔다 오려구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4
아저씨 일행과 헤어지자마자 바람은, 산을 덮은 암막처럼 거칠고 무거워졌다.
내장부터 집어 삼켜 버릴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초조했다.
머리속에서 작게 한마디 터져나왔다.
'흠, 이제 금방 정상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타종소리가 암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길었던 타종소리가 끝나자 어둠은 내 두 눈을 모조리 앗아가버렸다.
덜컥 겁이났다.

#5
처음 꺼내 마신 물에서 단내가 났다.
손전등을 켰는데, 어둠이 더 짙어져 버렸다.
불쑥 뭔가가 내 뒤를 덮치는 듯 공포가 찾아왔고, 그때 욱-욱 하고 부는 바람이
나무사이를 가득메웠다. 제살 부대끼는 소리는 마치 비웃음처럼 들렸다.
머리끝이 서고 이는 바람의 움직임이 내 살을 그대로 훔쳐갔다.
문득 스치며 지나온 표지판의 문구가 생각났다.
'무리한 산행은 금 하십시오'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다.

#6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고, 잠시 멈춰 옷을 고쳐입을 겨를도 없었다.
칠흙같은 어둠이 바짝 쫓아오고 있다. 지체하는 순간 그대로 나는 잡혀먹힌다.
급하게 뛰어내려가며 허겁지겁 옷을 꺼내입기 시작했다.
'담담하고 침착하게'
내딛는 걸음마다 머리로 외고 또 외었지만, 어둠에 이어 바람은 내 귀마저도 앗아가버렸다.
아니, 내 흉부를 그대로 드러내 버렸다. 그때 우두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왼쪽 발목이 껶여버렸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카톡소리도 사라졌다.
산정상 300 m 남짓 남겨둔 지점이었다.

일행없는 야간산 초행길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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