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

삶의 일각




화장실이 멀다.
먼저 화장실 방향을 한번 쳐다 봐야하고
몸을 일으키기 위해 땅을 짚어야 하고
팔이 지지대가 되어 다리에 힘을 싣는다.
그리곤 잠깐 현기증도 느끼겠지.
한발짝 내딛어 화장실로 다가가다 물병이 눈에 띄면 아마도
손을 뻗어 병을 쥐고 마개를 열어 물을 한모금 마시겠지.
무의식 중으로 허리를 한 번 긁고
얼굴을 두어번 쓸어내리고
문득 눈에 비춰진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비가 오고 있다.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자잘하게 귓가에 어떤 소리가 닿는 것 같았다.
크게 한숨을 들이키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눈에 둥근 손잡이가 들어오고 그를 잡아 비틀기 위해
손을 뻗는다.
이제 당기기만 하면 화장실인데, 외부 압력때문인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한번쯤은 손잡이를 놓치고 말겠지.
무심코 잡은 손잡이는 아니나 다를까 손에서 멀어지고 만다.
다시 손을 뻗어 당겨보지만 역시나 문열긴 여간 쉽지가 않다.
흉부 근육이 움직이는걸 느낀다.
그 사이로 낯선 바람이 드리운다.
생각했던 그대로다.
살 끝이 솟는다. 두피도 솟는다.
어두 컴컴한 화장실, 맞다. 불을 켜지 않았다.
불을 켜기 위해선 몇걸음 갔다 다시 돌아와야하는 이유로
나는 여기에서 행해야 할 행동 하나를 줄였다.
덕분에 어두컴컴하고 습한 바닥에 발을 조심스럽게 내 딛는다.
한결 차가워진 공기가 피부에 맡닿으면서 자연스럽게 긴 호흡을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내 몸에서 소변이 쏟아진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소변을 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얼마만 큼 빠져 나가는지, 얼마가 남았는지 어렴풋하게 추측할 수 있다.
몸이 가벼워지는것 같고, 기분이 한결 신선해지는 듯 하다.
내몸에서 멀어지는 소변 줄기를 따라 좌변기 속을 내려본다.
고여진 물에 내가 쏟아내는 물이 더해지지만 물은 좀처럼 위로 차오르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투명하던 물이 노랗게 변해간다. 참았던 소변에 그 농도가 짙어졌나보다.
혹은 내가 느끼는 피로때문일 수도 있겠다.
요도를 타고 흐르는 소변이 끝을 맺으면 이제 나는
변기뚜껑을 닫아 물을 내리겠지
손을 뻗어 레버를 내리면 의도한것인지 우연인 것 인지 듣기에도 시원한,
아니 뭔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변기를 통해 흐른다.
가볍게 생식기를 털어 한방울 묻은 소변까지 떨궈낸다.
다시 돌아가는길에 들어선다.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역순으로 이행하면 나는 아까 그자리로 돌아가게된다.
마침 이불 위에 놓여진 핸드폰에서 불빛이 훤히 드리워진다.
재미있게도 별 생각없이 나는 그 불빛을 보고 몸이 스스로 이끌려 다가간다.
어느덧 나는 그 불빛을 따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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