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7.

언어파괴

잠깐 생각해 봤는데,
깊게 생각한건 아니고 짧게잠깐,

뭐냐면, 언어파괴와 관련된건데-지금처럼 신조어 발생이 난무하고 말의 형태 따위가 바뀌는-
기정화된 언어가 다른모습으로 변절, 파괴, 그리고 가속화가 된 그 시발은 언제일까,하고
아무래도 내 생각은, 그러니까
두벌씩키보드말야.

현대문명이 가져다 준 폐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히 언어는 제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변하고 말았을테지만,
어느 기점을 꼽으라면 저게 보급되면서 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우리 언어를 파괴하는 건 우리지만, 공조한 혐의로 소송을 걸어야 하는거 아닌가,

2012. 6. 26.

일기


나는 뭔가에 쉬이 집중하는 편은 못 되지만
가끔 뭔가에 집중아닌 집중-그러니까 내가 하는말은, 집중이라고 하기엔 궁금증에 대한 해갈을 위한 고집에 가까운-에 빠지게 된다.
이 때, 누군가가 나의 사색을 방해한다거나-말을 건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게하여 당시의 집중력을 흐트리는 행위-하면 마음이 갱장히 불편해지며 짜증이
솟구쳐 나온다.
난 내가 뭔갈 할땐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다.
이 말을 하려 했던 건 아니고-

주말부터 금일, 그리고 내일도 뭔가에 꽂혀 집중하게 될 런지도 모르겠다.
아까 잠깐 SNS에 시간을 할애 했는데, 나는 여기서 충격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사람들-한 계정 계정이 한 사람으로 느껴지니- 혹은,
한 사람이 수 많은 말을 내뱉는 걸 보며 잠깐이지만 영원한 듯한 시간속에 있었다.
다시 쉽게 말 하자면, 한 화면을 스치듯보는 짧은 시간에 충격에 빠져 한참은 쳐다 본 듯 했다.

짧은 시간 내눈에 보여진 것은 이랬다.
'욕망, 욕구불만, 잡담, 왁자지껄 시장통, 상대방에게 채 말이 전달되지 못하고 멸한 死語, 마음.. 기타등등'
작은 모니터속에서 온갖 잡다한 것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단순했다.
역겨움 그리고, 환멸.

뭐, SNS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느꼈던 내 감정을 거짓없이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그것은 분명히 부정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고, 환멸을 보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수 많은 생각들이 검정 글씨로 조합을 이루어 실시간 상호 교류가 이루어졌고
글은 채 읽기도 전에 쉴 틈없이 아래로, 아래로 사라져갔다.

마치,
빡빡히, 빼-곡히 모인 개미떼가 한 모금 뱉은 물벼락에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할까.
분명히, 개미떼가 서로 엉켜붙어 격렬한 운동회를 하는듯 한 모습에는 먼지가 자욱이 일고 있었고, 그 광경은 아비규환이었다.



2012. 6. 24.

작사 #1



오늘도 고요한 밤이 찾아왔어요
고요함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네요
밤이 내려와도 우린 달라질게 없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외로움을 주나요

나는 아직도 그대에게 줄 것이 많은데
오오 나에게 외로움만은 주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볼게요
아무것도 욕심내지않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께요

부디 오늘도 어제같은 밤을 내게 주세요







2012. 6. 21.

낭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채 못하는 저는
개똥밭에 굴러도 세상 볕이 좋다는 세상 말을 따라
대장 깊숙히 긴 호흡 하는 일을 일삼지 않았다.
이에 빼그덕이는 초침소리에 가슴이 늙어가는 때에는
그래도 제 눈 가리고 세상 맛 좋았다 이를까 나는 그것이 두렵다.




짱구


어둑컴컴히 내려앉은 실내 공기에 사지가 맡겨진 채
수 많은 레버와 버튼 소리 속에서 나는 그렇게 마음을 울었나보다.
키를 넘는 아케이드 오락상자에 영혼을 담아
땀을 흘리고, 손톱이 갈라지도록 버튼을 후려 갈겼던 그 때.
숨소리마저도 낮은 공기흐름으로 마비 시켜버렸던 멜로디
나는 그때 이미 가슴으로 울어버렸나보다.


잠자리





잔잔한 수면 위 옅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은 잠자리 입니까
날개 짓도 멈춘 채 수면 위를 흐르고 있는 나는 진정 잠자리 입니까
파르르 떨어 진동을 흐트리는 그 날개 짓은 진정 잠자리 입니까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짙은 바람의 향이 두 귓볼을 훔치며 달아 나는 때에도,
뺨에 흐른 눈물 자욱이 검게 말라가는 때에도,
굳건히 그 자리에 매김 하는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시린 바람에 손 녹일 곳 없이 어둡고 차가운 주머니 속을 길 잃어
불안함에 잠식되어 자위하는 너에게 나는, 네게 있어 목걸이가 된다.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억지 거짓으로 속여 낯선 품에 코를 묻어 언 몸을 녹이는 때에도,
미온한 너의 체온과 시린 가슴에 젖어 사늘한 목걸이가 되는 나는, 너의 목걸이가 된다.

제 가슴을 찢어 발겨 눈물조차 말라버린, 메마른 울음을 하는 너에게 나는, 그저 목걸이가 된다.
염원하고,
또 갈망하고,
 소스라치게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네게 있어 나는, 너의 목걸이가 된다.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나는, 그대의 목걸이가 된다.





나는 꽃봉오리가.

나는 만개한 꽃보다 꽃망울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만개한 꽃의 향취를 코로 훔쳐다 내가 꽃과 섞이어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되기 보다는
가슴으로 멍하니 들여다 보는 편이 더욱 자극적이다.
아직 피지도 않은 꽃망울을 보는 때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망울을 툭- 하고
건드려 보고싶은 충동마저 느끼고만다.
아직 피지않은 꽃이어서 더 자극적인,


시계라는 테옆을 감은 차는 삐그덕 삐그덕
거칠만도 한데 유난히 조용히도 삐그덕 삐그덕.


정물사진






학습효과

정물사진






무제



2012. 6. 20.

신발과 발에대한


신발을 신다보면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지고 낡아진다.
발과 신발사이에 틈이 생기고, 신발은 발의 모양에 따라 그 형태도 변질되기도 한다.

꼬질 꼬질하게 때가 탄 신발엔 이유 모를 슬픔이 묻어있다.

신발과 발에 대한 관계는 나에게 흥미로운 소재거리로 남는다.
사람으로 뻗어난 사지, 그리고 그 제일 하단부에 위치하는 발.
땅을 디디는 발바닥과 하늘을 치켜 바치는 발등 그리고, 작게 뻗어있는 발가락과
그것을 옥죄고 있는 신발.

신발과 발은 무슨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온종일 빛을 보지 못하고 양말과 신발에 쌓여 하루 온종일 남에겐 보여지지 않는다.
물론 계절에 따라 다르고 성별에 따라 인식적인 차이때문에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다.

발과 발바닥 그리고 발등으로 이루어진 이 발이 양말따위로 덮어 쌓여진데다가
신발이라는 사지(발이 우주를 담는다고 하니-)를 옥죄는 구속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구속,
구속이다.




나는 대체로 사물의 근본 성질에 대해서 고민을 쉬이 하는 편인데,
 안다 한 들 자위에 그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유기적으로 엮어있는 우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컨대-

여자의 발 사이즈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손에 잡히는 여자발이 굉장히 매력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자체가 성적인 자극을 불러 일으킨다는 느낌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손에 들어오는 발을 잡아 본 경험은 없었지만.


수치에 대해 둔감한 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구체적이진 않지만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부재에 대해 채우는 일을 즐겨했다.
따라서 235mm 이상의 발은 왠지 모르게 크게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런 이미지들은
부담감이 작지 않게 작용한다.
240mm와는 실제 5mm 차이. 그리고 45와는 10mm 차이 일 뿐이지만 숫자가 가져다 주는 느낌은 내게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를테면 양면 색종이같은 느낌이랄까.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
작은 발은 매력있다.


고통받지말자.






부끄럽자나.
머한다고 저성능 골머리 과부화시키냐.
그러다 고장난다.


무제






정물사진
@이태원



은교를 위한 꽃





친구와 접선을 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가고 있었써여.
길가에 모래로 채워진 폐타이어를 봤써여.
그 모래속에서 꽃이 폈써여.
은교를 위한 꽃이라고 생각해써여
그래서 이름을 붙였어여.


회귀



'한 사람이 등산을 시작했다.
중턱 중턱마다 잠깐 숨을 고르고 피로한 다리를 풀었다.
그리고 또 다시 산을 오른다. 등산,

가끔 불어와 땀을 쓸어내리고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에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을 느끼고 오르고 또 오르며 머리속은 이내 비워진다.

발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색색 거리는 숨소리만 귓전에 맴돌고 있다. 두근두근 가슴뛰는 진동이 몸 전체를 두드리고 있고 어느새 멀리 물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공기는 어느곳보다 선선했고 눈 앞의 광경은 어느곳보다도 탁 트여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냈다.'

가 끝이어야 하는데,  이다음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채비를 하고 그 사람은 다시 돌아간다.
목표점을 선정하고 그를 향하여 행진했다. 그리고.

'그리고'

막상 목표점에 도착하고 보니 '그리고'가 남았다.

영화 그랑블루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빛도 보이지않는 어두컴컴한 심해로 들어가면, 나는 다시 올라올 이유를 찾지 못한다.'